본문 바로가기




  • 달빛아재의 IT/ 투자/사는 이야기
  • 블로그로 세상과 소통하기
  • 살아가며, 느끼며, 배우며, 나누며...




이것저것 요모저모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by 달빛아재 2023. 8. 20.
반응형

이방원의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의 단심가 (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는 고려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즈음에 나온 시조입니다. 당시 시조는 문학의 한 장르로 한창 형성되어 가는 시기였고 고려 개혁 세력이었던 이방원과 고려의 충신으로 남고자 했던 정몽주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시조로 멋드러지게 드러낸 것이죠. 원래 이 시조들은 평시조로 제목이 없었으나 후대에 사람들이 제목을 붙힌 것입니다. 

  이 시조가 등장한 배경은 이러합니다. 어느 날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몸을 다칩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정몽주는 병문안을 가는 것을 핑계로 대고 이성계의 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집으로 찾아 가게 됩니다. 이때 이방원이 정몽주를 향해 시를 한 수 읊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이 편을 해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해 사이좋게 살아가자는 뜻이 담긴 시였습니다.

  반면에 정몽주는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단심가(丹心歌)」로 답합니다.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정몽주의 굳센 의지가 담긴 시였습니다. 이 시를 듣고 이방원은 결국 정몽주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끝내 자기의 부하를 보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이게 됩니다.

북한 개성에 있는 선죽교

   이성계에 의해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원은 조선의 3대왕 태종으로 등극하게 되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두고 보면 어쩌면 이방원이 성공한 것처럼 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방원은 변절자로, 정몽주는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몽주가 보여준 충절은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데도 꼭 필요한 정신이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 사람들도 정몽주의 충절을 기억하며 <단심가>를 널리 부르며 사람들 사이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면에서 정몽주도 결코 실패자의 모습이 아닌 분명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겨집니다. 인생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처지와 형편과 모습에 따라 입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이 서로를 대적하고 충돌하게 만들어도 각자의 가치를 잃지 않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스스로에게나 세상에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칫 서로 갈등으로 갈 수 있는 일들이 시대와 입장 또는 상황과 처지로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는 것들이 늘어 나는 것 같습니다.

반응형




댓글